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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읽어보기

(책리뷰)문재인의 운명

by 밝은햇님 2017.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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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운명


내가 이 책을 예전에 읽었다면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과 관련된 이야기에 집중해서 읽고,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하려는 마음으로 리뷰를 썼을텐데, 이제서야 읽게 되니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보게 된다. 상황이 바뀌니 그에 따라 같은 사람을 보는 마음이 달라지네.. 하나의 책이고 하나의 이야기인데, 이렇게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다른 시선으로 보아지는 그 사람이 예전 보다 더 훌륭해 보이고, 믿음이 가는 사람으로 보이니 다행스러운 일인것 같다. 글을 쓴 사람이 이 책을 썼을 당시의 마음가짐과 위치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달랐던 시기였음을 생각하며 읽으니 그 진정성이 느껴져 더 감동이 배가되었다. 

<문재인의 운명>은 2011년 6월 발간 된 책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일(2009년 5월 23일) 2주기를 맞으며 그를 기억하고, 함께 지나 온 시절을 추억하고, 참여정부를 이끌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씌여진 회고록임을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시대를 넘어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그를 '시대의 짐'으로 부터 놓아주고 그 짐을 우리가 떠안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들, 참여정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먼저 해야 할 책무는 자기가 보고 겪었고 일했던 내용을 증언하는 것이고, 다음 시대에 교훈이 되고 참고가 될 내용을 역사 앞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하고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한다. 그런 바람으로 펜을 들었다." 

출간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중반을 넘어서는 시기였고(이명박 대통령 임기: 2008년 2월 25일~2013년 2월 24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던 문재인은 출마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차기 유력 야권 대통령후보로 부상하고 있던 시기였다. 

당시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니, 본인은 "정당인도, 정치인도 아니기때문에 이미지가 좋아서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것 같으며, 비전이나 소신이 뚜렷하게 선 것도 아니고 그동안 준비를 해 온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권에 도전할 만한 능력이나 자질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네^^. 그게 벌써 6년 전 이니까 당시에는 진심에서 우러난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2년 후 2013년 대선에서 패배해 박근혜후보가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2017년 3월 10일 탄핵되어 물러나기까지 긴 4년을 지나, 드디어 2017년 5월, 제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과정을 되돌아 보니 운명이라는게 있나보다 싶다. 

이제 그 "운명"의 스토리를 살펴보면;


1. 만남

1982년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은 처음부터 그 과정과 인연이 묘하게 얽혔다. 각자의 엇갈린 인연으로, 6살의 나이 차이와 함께, 고시 5년 대선배인 노무현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게되고,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 이야기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동업자 또는 동지로서 함께 동행하게 되는 20년간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대학생들의 학생운동 사건과 노동 사건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탄압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요구하거나 노조결성을 추진하다가 집단 해고되는 사건들도 생겨났다. 이들이 우리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를 찾아오는 사건을 피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에 공감하면서 열심히 변론했다. 차츰 우리는 부산지역 노동인권 변론의 중심역할을 하게 됐다. -p.38

5공으로부터 6월 항쟁에 이르는 기간까지 노 변호사는 부산지역 민주화운동의 중심이었고, 1988년 4월 13대 총선에서 "사람 사는 세상"의 선거구호와 함께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국회의원이 되면서 영광도 컸지만 좌절과 고통도 많아 정치를 그만 둘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치를 그만 둘 기회가 한 번 있긴 했다. 종로를 버리고 부산 강서에서 출마해 낙선했을 때였다. 그런데 낙선하자 오히려 원칙의 정치인, 바보 노무현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 힘으로 재기했고, 끝내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비운의 일을 겪고 나니 처음부터 정치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말렸어야 했다는 회한이 남는다. -p.74         

2002년 대선에서 극적인 승리를 이루어 낸 후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부산에서의 기억을 회상하며 "만남" 장은 마무리된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 생애 가장 기쁜 날 중 하나였다. 노 변호사와 함께 최루탄을 맞으며 누빈 거리였다. 민주화를 외치며 이 거리에서 드러눕기도 했다. 그 거리에 기쁨이 가득했다.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싶은 순간이었다. 앞으로 겪게 될 고통이나 고난은 생각하지도 못했다."-p.102  

2. 인생

부산에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기 직전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초년 인생 이야기가 담긴 장 이다.

1950년 흥남철수 때 거제도로 피난을 떠나오신 아버지와 어머니, 피난민으로서의 가난한 삶, 문제아였던 고등학교 시절, 대학 재학시절의 학생운동 및 구속 그리고 김정숙 여사와의 만남, 구치소 수감생활, 강제징집, 공수부대, 고시공부, 다시 구속, 유치장에서 맞은 사시합격, 시위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안돼 변호사의 길로 나서게 되어 노무현 변호사를 만나게 되기까지의 삶이 회고된다.

폭동진압훈련에 관한 이야기가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긴 역사 속에서의 개인의 의지와 선택, 운명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내가 복무할 동안은 훈련만 했을 뿐 실제로 폭동진압에 출동한 일은 없었다. 제대 후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내가 근무하던 제1공수여단 제 3대대가 부산에 투입됐다. 군복무를 좀 더 늦게 했다면 나도 역사를 거스르고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는 역할에 동원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p.165

그리고 5.18 광주항쟁과 관련하여 언급된 "서울역 대회군". 점잖은 선비같은 느낌의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이런 투사와 같은 모습이 있었구나 싶었고, 5.18 당시 광주시민의 희생에 대한 미안함이 깊이 담긴것 같아서 인상깊었다.  

1980년 5월 15일, 신군부의 군부독재 연장에 대한 저항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서울역에는 거의 20만명에 달하는 대학생들이 모였는데, 그 순간 각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전면퇴각을 결정했다. 군 투입의 빌미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서울역 대회군'이다. 참으로 허망한 일이었다,  복학생 그룹은 군이 투입되더라도 사즉생의 결의로 맞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민주화를 향한 마지막 고비였다. 거기서 주저앉으면 또 다시 군부독재가 연장되는 것이었다. 나는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마지막 순간 배신이 5.18 광주항쟁에서 광주시민들로 하여금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르도록 했다고 생각한다." -p.177


3. 동행

정치와는 거리를 둔 채 민정수석으로서의 청와대 동행, 한계용량을 초과하는 업무량으로 힘들고 고달팠던 청와대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대북송금 특검, 검찰과 국정원 그리고 타 권력기관들의 개혁, 노동문제 포함 사회적 갈등해결, 미국과의 관계 및 이라크 파병, 나라종금 사건과 안희정씨등 참여정부 공신들에 대한 조사, 노무현대통령 탄핵 재판과정, 사법개혁, 과거사 정리작업 등 참여정부 시절에 일어났던 주요 사건들에 대한 입장 설명과 개혁을 위한 노력, 그 과정에서의 공과 과에 대해 풀어나가는 장이다. 참여정부 임기 마지막 해의 비서실장으로서 업무, 한미 FTA, 남북정상회담, 열린우리당의 분열, 노대통령 퇴임 이후 봉하마을에서의 생활, 정치보복으로 비극이 시작되는 상황까지로 마무리되는 이 장은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국정운영상의 잘잘못은 너무 정치적인 사안이라서 내가 섣불리 판단하고 평가할 일도 아니고, 잘 알지도 못하므로 길게 이야기 할 수는 없고, 이 장에서 관심있게 보았던 글들만 발췌해보면..   

"아무리 언론이라 해도, 또 국민의 알권리라 해도 원하지 않는 사람을 포토라인에 억지로 세워서 답변을 강요할 권한이 있는 것일까? 이제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타인의 명예를 존중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p.297

노무현 대통령 탄핵재판의 대리인으로 포토라인에 서게되면서 생각해보았던 부분인데, 지난 해 부터 이어지는 국정농단사태와 관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포토라인 앞에 세워졌다. 그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해도, 모두 위와 같은 입장일 것이다. 나도 뉴스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보아왔던 부분인데, 이 글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탄핵재판에 대해 꼭 생각해 밨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다행히 기각됐다. 하지만 만약 인용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실제로 헌법재판관 중 3명은 인용의견이었다. 같은 의견을 가진 재판관이 다수였다면 대통령은 탄핵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그런 권한을 줬을까.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을까. 국민이 그들을 현법재판관으로 선출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재판관인가. 꼭 그런것도 아니다. 헌법재판관 9인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3인은 대통령이 지명하므로, 적어도 그 6인은 정치적으로 임명된다. 탄핵제도는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마련된 고도의 헌법적 장치인데, 정작 헌법재판을 담당할 재판관들은 대단히 허술하게 정치적으로 임명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판단과 결정으로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을 축출할 수도 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장치로 작동될 수 있는 것이다. 탄핵제도는 필요한 제도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헌법재판관 임명제도는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p.302 

탄핵재판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을 해 보게 된다. 

탄핵반대 여론이 압도적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 제도 때문에 당시에 만약 탄핵이 인용되었다면.. 

국민 대다수가 탄핵을 찬성했다고는 하지만, 올 초 탄핵이 인용되어 파면된 박근혜 대통령은..


4. 운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일인 2009년 5월 23일, 생애 가장 긴 하루였다는 그 날 이후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후반부는 개혁진보 진영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마무리 글로 이루어져있다.  

술을 한 잔 마시면 가끔씩 옛날을 추억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인생에서 노무현은 무엇인가. 잘 모르겠다. 하여튼 그는 내 삶을 굉장히 많이 규정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운명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좋아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도 너무 많아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와의 만남부터 오랜 동행, 그리고 이별은 내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가 남긴 숙제가 있다면 그 시대적 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물며 나는 더욱 그렇다. 기꺼이 끌어안고 남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대에 다 끝날 일이 아닐것이다. 그래도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제대로 구축해 놓고 싶다. 참여정부 5년을 되돌아보고, 평가하고, 성찰하는 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 -p.441

국정을 수행하면서 보수 뿐 아니라 진보 진영으로부터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참여정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보진영이 영원한 소수파로 머물지 않으려면 국가에 대해, 그리고 국가 경영에 대해, 나아가서 외교 및 안보문제에 대해서까지도 더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그리고 개혁을 원한다면 자신들이 바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개혁을 위해 좀 더 전략적인 접근을 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진보,개혁정부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만 논의하지 말고, 그 과제들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 더 중점을 두고 고민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참여정부 인수위시절, 이회창 후보가 당선될 경우 보수 쪽에서 준비했던 국정운영프로그램을 담은 내용이 인상적이다. 

연도별, 분기별, 월별로 나름의 국정개혁과제를 배치하고, 다시 주별, 일별 계획으로 나눴다. 집권 후 국정운영을 사전에 그토록 치밀하게 계획해 두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놀라웠다 참여정부는 그런 것 없이 정권을 맡았다. 대통령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준비를 갖추고 있었을 뿐, 정당이든 연구소든 이쪽 진영 어디에서도 그런 준비를 한 곳은 없었다. 그런 것이 우리의 부족한 점이었고,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p.458

책의 마지막 장이 비장하다. 

굴곡이 많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돌아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한가운데에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더 어렵게 자랐고 대학도 갈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나보다 훨씬 뜨거웠고, 돕는 것도 훨씬 치열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p.465-466 


원래 생각했던 이 책의 제목은 "동행" 이었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께서 "동행"이라는 책을 내시면서 제목을 바꾸게 되었다는데.. 책이 씌어진 2011년에는 "동행"이 어울리는 제목이었을지 몰라도, 2017년 19대 대통령이 된 현재 상황으로 보자면, "운명"이 딱 맞는 제목이 아닌가 싶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험하고 먼 물길을 흘러왔으며, 육신은 이별했으나 정신과 가치로 한 물줄기에서 만나 함께 흘러갈 것이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강물이 되어 다시 만나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뤄 함께 흘렀으면 좋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희망과 잘 어울리는 시로 서문에 인용된 도종환 시인의 <멀리가는 물>.


몇 달 전 보았던 영화<노무현 입니다>가 생각난다.

유시민작가의 인터뷰 장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나누었다던 대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기억이 난다.

노무현 대통령이 꿈꾸는 "사람 사는 세상"이 올 것 같으냐는 대통령의 질문에 유시민 작가는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지금 변화를 시작하는 파도 위에 대통령이 계시고 언젠가는 그 파도가 커져 분명 그런 세상이 올거라고 믿는다"라고 답했고, 이에 노 대통령은 "그런 세상이 올 때쯤이면 나는 그 세상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온다면야 내가 없으면 어때" 라고 말씀하셨다고.. 

시간이 지나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거짓말처럼 새로운 변화들이 일어났다. 

'이 모든게 운명인가보다' 라고 생각할 수 밖에, 그리고 이 운명적인 역사의 흐름이 올바른 방향이기를 기대하면서 오늘 포스팅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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