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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숨결이 바람 될 때

by 밝은햇님 2017.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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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When Breath Becomes Air)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 폴 칼라니티(Paul Kalanithi)


이 책은 2년 전 고인이 된 저자 폴 칼라니티(1977.4.1-2015.3.9)의 회고록이다. 

36세의 스텐포드 의과대학 신경외과 레지던트였던 폴 칼라니티는 2013년 5월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2년만인 2015년 3월 세상을 떠났다. 

외과의사로서 승승장구 하며 장래가 촉망되던 레지던트 6년차 시기에 폐암 말기 진단을 받은 폴 칼라니티는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고민했다.  의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의사의 길을 걷기 전까지 폴 칼라티니는 철학과 문학을 사랑하는 영문학도였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왔을 때 문학은 그의 마지막 삶을 의미있게 해 줄 수 있는 목적이 되었고,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 쉼 없이 글을 썼다. 

"저는 40년의 인생 계획을 짰었어요. 첫 20년은 외과의사이자 과학자로, 마지막 20년은 작가로 살 생각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 20년에 들어서게 됐으니,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난감하네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면 쉬울 텐데요.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쓸 겁니다.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어요." p.166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p.180 

마지막 2년간 폴 칼라니티는 암과 싸우면서도 마지막 남은 레지던트 과정을 이어나갔고, 삶의 의미를 뒷받침해 줄 수 있도록 아이를 가지기로 결심하고 시험관아기시술을 통해 딸을 얻었으며(2014.7.4), 의사와 환자로서의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기 위해 끊임없이 글을 썼고, <뉴욕타임즈>, <스텐포드메디슨>등에 에세이를 기고함으로써 이슈가 되어 사후에 이렇게<숨결이 바람이 될 때>가 출판되게 되었다.

폴 칼라니티가 기고했던 유명한 두 편의 에세이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2014년 1월 24일, 뉴욕타임즈 - How long have I got left

https://www.nytimes.com/2014/01/25/opinion/sunday/how-long-have-i-got-left.html?mcubz=1

이 글이 기고된 시기의 폴 칼라니티는 암 진단 후 8개월이 되었던 때로, 치료에도 진전이 있었고,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은 아직 아니었다. 환자들 누구나 그렇듯, 폴 칼라니티도 치료를 받으며 혹시나 하는 희망과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일상을 이어나가며 마지막 남은 레지던트 과정을 마무리하던 중이었다. 죽음은 다가오고 있는데,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 또 남아있는 시간 동안 이루고 싶은 의미있는 일들을 찾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글이다. 

2015년 봄, Stanford Medicine - Before I go

http://stanmed.stanford.edu/2015spring/before-i-go.html

2015년 봄 <스텐포드메디슨>에 실린 "Before I go"는 시간에 관한 글로, 폴 칼라니티가 2015년 3월에 사망했으므로, 삶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남긴 마지막 글이 되는 셈 인것 같다. 비교적 짧은 이 기고문은 한 두 문장 빼고 대부분 책에 그대로 옮겨져 있어서 요약해보았다.

130~132쪽;

레지던트 기간에는 하루는 길지만 한 해는 짧다는 말이 있다. 신경외과 레지던트의 일과는 보통 새벽 6시에 시작해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니까 수술실에서 얼마나 손이 빠른가에 따라 근무 시간이 결정되는 것이다. 레지턴트의 수술 기량을 판단하는 기준은 기술과 속도다.

수술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거북이와 토끼 이야기를 예로 들면 가장 잘 이해가 될 것이다. 토끼는 최대한 빨리 움직인다. 반면 거북이는 신중하다. 만약 토끼가 사소한 실수를 너무 많이 해 서 미세하게 조정할 일이 계속 생긴다면 거북이가 이길 것이다. 만약 거북이가 각 단계를 계획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인다면 토끼가 이길 것이다.  

수술실에서의 시간이 재미있는 점은 정신없이 전속력으로 움직이든 차근차근 나아가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230쪽~234쪽;

시간은 이제 나에게 양날의 검과도 같다. 지난번에 병세가 악회되어 심하게 축난 몸 상태는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암이 재발하게 될 테고, 그러다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죽음은 예상보다 느리게 올지도 모르지만, 원하는 것보다는 분명 빠르게 닥쳐올 것이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의 시간이 팽창한다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의 시간은 수축될까? 분명 그렇다. 내가 보내는 하루는 엄청나게 짧아졌다. 

오늘과 내일을 거의 구분할 수 없게 되자,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수술대 위의 환자에 집중하던 외과의 시절에, 시곗바늘이 제멋대로 움직인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의미 없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지금이 몇시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마지막 문장은 폴 칼라니티가 사망할 당시 8개월이었던 딸 아이에게 남긴 글로, 저자가 자신의 원고를 책으로 출판하고 싶어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되었을 것 같은 문장이다. 


남편의 뜻에 따라 그가 죽기 직전까지 남긴 원고들을 모아 책으로 마무리 하면서 쓴 폴의 아내 루시 칼라니티의 글이 개인적으로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는 폴이 세상을 떠나면 내 인생에는 오로지 공허와 슬픔만 남을 줄 알았다. 누군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똑같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는, 또 끔찍한 슬픔과 비통함의 무게를 못 이겨 때로 몸을 떨며 한탄하면서도 여전히 큰 사랑과 감사를 계속 느낄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폴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거의 매순간 그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우리가 여전히 함께 만든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딸을 돌보고,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이 책을 출판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폴의 무덤을 찾아가고, 폴을 애도하면서도 그에게 경의를 보내고, 꿋꿋이 버텨나가고..... 이렇게 내 사랑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p.261


p.252

폴 칼라니티는 자신의 글을 통해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이해하고, 언젠가는 죽음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그리고 그저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저자가 의도한 대로, 나는 폴 칼라니티의 글을 통해 막연하여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열정적으로 죽음에 맞서 원하던 삶을 이어나간 폴 칼라니티의 용기를 두고 두고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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