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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우리는 사랑일까

by 밝은햇님 2017.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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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우리나라에도 몇 번 다녀간 적이 있는 인기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두번째 소설. 

원제는 <The Romantic Movement>. 

주제가 바로 드러나는 원제 보다 우리말 책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서점의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집어들고 훑어 보게 만들 만한 나름 자극적인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사랑은 늘 머리아픈 고민거리 아닌가?

책의 내용은 단순하다. 여 주인공 앨리스의 연애 과정을 제3자 입장에서 지켜보면서, 그때 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심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설명해보려고 풀어 놓은 이야기라고 하면 거의 맞을 것 같다. 그래서 차례을 보면 소제목들이 많고, 짤말짤막한 에피소드와 이에 대한 분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실 차례의 소제목 만으로도 앨리스의 연애 과정이 다 보인다. 서장(앨리스에 대한 소개)-현실-예술이냐 생활이냐-이야기에 대한 선망-냉소-파티-동정녀 잉태-사랑을 사랑하다-불확정성-촉매-섹스,쇼핑,소설-세탁 주기-가치 체계-상대방을 안다는 것-예측 가능성-사랑의 영속성-권력과 007-신성한 관계-에릭의 짐-왜 사랑받는가?-여행-독서의 문제-유쾌증-다이빙, 루소, 그리고 너무 생각이 많은 것-사춘기-여성혐오-자기 자신에 대한 휴가-지역성-내가 어떤 사람이 되게 하나?-영혼-진실의 층위-의문-책임 떠넘기기-혼자만의 언어-오독-누가 노력하는가?-연애의 조각 맞추기-선언-초대-순교"의 순서만으로도 충분히 이 소설의 스토리를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스토리에 비해 책은 그리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생각하고 정리하면서 읽어야 이해가 되는 책이라서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고 해야할까. 알랭 드 보통의 재치있고 위트 넘치는 표현들이나 분석들도 재미있고, 각 스토리에 알랭 드 보통이 철학적으로 또 어떻게 연결시켜내는지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들을 발췌해보았다. 

에세이소설이라서 적어 두고 싶은 부분이 많네..     

앨리스는 시인들과 영화인들이 미학의 마법공간에서 아름답게 그려낸 영혼의 결합 같은 관계가 아니면 타협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D.H.로렌스의 정의에 따르면 그녀는 '다른 것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자였다. p9-서장

"앨리스를 사로잡는 건 그런 사랑이 아니라구요. 사랑 사랑,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고 초콜릿이 있는 그런 사랑." "관계를 맺는다는 건 상상하고는 다르리란 말을 하는 거라구. 그건 힘든 일이야. 기저귀를 갈아 채우고, 가계부를 맞추고, 두 사람 다 고단하고 짜증날 때도 감수해야 하고. 거기에 매혹 따위는 없어. 남녀가 관계 맺는 게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는 키스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면, 꿈이나 꿔."p23-현실

하지만 앨리스는 신을 믿지 않았고, 예술과 사랑이 신의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 영화가 '나만 이런 감정을 겪으며 이 거리를 보고 가페에 앉아 있는 게 아니야...' 하는 생각을 통해 고립감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듯이, 사랑은 그녀가 '당신도 느끼나요? 정말 근사하죠. 할 때 내가 바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하고 속삭일 수 있는 사람을 희망하게 했다. 이것이 바로, 한 영혼이 다른 사람의 영혼과 미묘하게 닮았음을 발견한다는 것의 실체다. p36-예술이냐 생활이냐

당연히 앨리스는 위대한 사랑 이야기에 감탄했다. 그 이야기에 담긴 필연성과 불가피성이 부러웠다. 단지 행복한 결말 때문에 끌리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야기가 그럴싸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장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지루한 장면마저 권태에 대한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p42-이야기에 대한 선망 

앨리스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비관적인 생각과 예상되는 실패를 피하고자 하는 희망의 관계는 악명이 높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매사가 어긋날 거라는 생각에 계속 집착하면, 결국 일이 제대로 풀렸다. p52-냉소

앨리스는 에릭 같은 남자를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그 남자는 경계할 만한 퉁명스런 매력을 풍겼고, 이 저녁 시간 전체를 장난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실성이 의심스럽기는 해도 매력만은 의심스럽지 않았다. p58 & 그 남자의 매력에는 위기도 비켜 가는 듯 보였다. 전형적으로 유혹적인 이탈리아 남자처럼 굴었다. 그 남자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고, 거절당할 가능성이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서투르고 모호하게 사랑을 속삭이느라 평생을 허비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조용히 자살하고 마는, 창백한 북구 남자들(베르테르 같은) 의 접근방식과는 대조되는 현란함이었다.p60-파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 베르테르가 이렇게 찌질하게 묘사되네..

인상이란 불충분한 증거에 기인하기 쉽다. 우리는 파티장을 나선 뒤 친구에게서 다른 손님은 어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솔직한 대답은"어떻게 알겠어? 겨우 두 시간 이야기했을 뿐인데."이다. 누군가와 100년을 더 살았다 해도, 의견을 말하라고 하면 "그냥 조금 알 뿐이야."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 대한 인상은 만난 지 2분 만에 형성된다. '이 사람 마음에 들어/안들어'그러한 반응은 생물학적인 욕구의 원초적인 유산이다. 선사 시대에 동굴에서 살던 사람들은 다른 종족을 보는 순간 친구인지 적인지 판단해야 했다. p68-동정녀 잉태

앨리스가 지금 에릭을 (신중하게 말해서) 사랑하는 것일 리가 없다면, 그녀는 아마 사랑을 사랑한 것이다. 이 동어 반복적인 묘한 감정은 무엇인가? 이것은 거울에 비친 사랑이다. 감정을 자아내는 애정의 대상보다는 감정적인 열정에서 더 많은 쾌감을 도출하는 것을 뜻한다. p74-사랑을 사랑하다

*멋진 표현이라는 생각에 개인적으로 베스트 No.2 구절로~ "사랑을 사랑하다" 

그녀가 에릭에게 끌린 데에는, 그 남자가 다른 여자들이 보기에도매력적이라는 점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이 레스토랑을 좋아하는 감정과 구조적으로 비슷했다. 다른 사람이 가치를 알아주고 탐낸다는 점이 그녀의 욕망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p94-촉매

잡지는 앨리스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녀는 의상 난을 보면서 자신의 옷장에는 없는 옷 때문에 서글펐고, 여가 난을 보면 자신이 가보지 못한 세계 곳곳의 햇살 눈부신 장소들이 떠올랐다. '삶의 스타일'이라는 난을 보면, 자신에게는 아마 제대로 된 삶도 없고 스타일은 틀림없이 없다는 느낌이 확고해져서 자존심이 상했다. 보바리 부인은 연애 소설을 읽었고 현대의 몽상가인 앨리스는 잡지를 읽지만, 둘 사이에는 중요한 연결 고리가 있었다. 양쪽 다 소설과 잡지가 더 매혹적인, 다른 세상으로 난 상점의 창 구실을 했고, 특별히 발달된 현혹적'사실주의'형식을 구현함으로써 욕망을 자극했다. p102-섹스, 쇼핑, 소설

건축가들을 낭만파와 지성파로 나누었을때, 지성파 건축가는 건물의 무게를 여러 기둥에 분산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삼아, 사고가 나더라도 다른 기둥들이 무너진 기둥의 몫을 나누어 지도록 했다. 에릭은 무게를 폭넓게 분산했다. 여자 친구를 몇 명씩 유지하는것, 어느 집단이 등을 돌려도 생존할 수 있게 충분히 많은 집단과 교제하는 것, 어느 거래가 실패해도 견딜 수 있게 돈을 많이 버는 것 등이 그 남자가 세운 기둥들이었다. 앨리스는 이와 딴판으로 매우 현명하지 못한 건축가였다. 그녀는 모든 욕구를 기둥 하나에 모으는 경향이 있었고, 그 기둥 하나가 온 무게를 견디길 바랐다. p137 & 에릭이 더 큰 선물을 주려는 것은 선물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감사하는 위치에 서면 자율성을 잃고 간섭 받게 되는 것을 싫어해서이기도 했다. 경제의 세계에서는 빚이 나쁜 것이지만, 우정과 사랑의 세계는 괴팍하게도 잘 관리한 빚에 의지한다. 재무 정책으로는 우수한 것이 사랑의 정책으로서는 나쁠 수가 있다-사랑이란 일부분은 빚을 지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빚지는 데 따른 불확실성을 견디고, 상대를 믿고 언제 어떻게 빚을 갚도록 명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일이다. 에릭은 빚을 제때 갚긴 했지만, 앨리스로서는 아쉬운 일이었다. 너무 급하게 빚을 갚고 그대로 잊어버리는 바람에, 그 남자는 그녀와 똑같은 감정의 성숙을 실현하지 못했다. p143-가치 체계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그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 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p177-권력과 007

앨리스는 자신의 모자란 점을 채우고자 사랑했고, 그녀가 갈망했지만 부족했던 자질을 상대에게서 추구했다. 그녀의 감정적인 욕구는, 상대가 가져다 준 조각 없이는 불완전한 퍼즐 같았다. 하지만 스스로 발전하면서 빈 공간은 변하고, 열다섯 살에는 딱 맞았던 조각이 서른 살 때는 필요치 않게 된다. 빈 자리는 윤곽을 다시 그렸고, 퍼즐-사람이 그에 맞추 변하지 않으면, 그녀는 헤어지거나 곤란을 무릅쓰고 결론을 끌어내고자 했다. p383-연애의 조각 맞추기

<우리는 사랑일까>는 1994년 알랭 드 보통이 우리나이로 25세에 쓴 소설이다. 젊은 나이에 쓴 작품인데 결말이 너무 어른스럽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에세이 같은 느낌의 작품이라서 그러려니 생각한다. 따뜻하고 편안한 새로운 사랑으로 마무리 된 이 결말이 과연 진짜 앨리스가 원하는 사랑이고 또 영속적인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앨리스와 에릭의 사랑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길에서 잠시 짧게 교차하는 부분이었다고 한다면, 필립과의 사랑도 또 교차하는 부분에서만 함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알랭 드 보통이 부정적으로 언급했던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점을 과장하는 흥미로운 과정'이라는 조지 버나드 쇼의 경구가 나는 왜 더 멋있게 느껴지는지.. 사람들이 사랑하는 방식에는 정도 또는 정답이 없으니까, 그래서 끊임없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는게 아닐까..


Love consists of overestimating the differences between one woman and another. 

-George Bernard sh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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