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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나의 한국현대사

by 밝은햇님 2017.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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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14, 55년의 기록


작년에 읽었던 책인데,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추천하고 싶은 책~ 

책 표지를 넘기면 맨 먼저 나오는 헌정 문구. 

"같은 시대를 숨 가쁘게 달려온 모든 벗에게" 

유시민 작가의 세대는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고 숨가쁘게 달려온 세대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한국전쟁 이후 부터 2014년의 세월호 침몰사고 까지의 지난 55년간의 중요했던 역사적 사실들을420페이지에 걸쳐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전체적으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라고 E.H.카가 내렸던 역사에 대한 정의를 전제로 하여 씌어졌다.      

모든 역사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의 주관적 기록이다. 수많은 과거의 기록들 중에서 역사가가 판단하기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건을 골라서, 그러했으리라는 역사가의 상상력까지 동원되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는 과거의 실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과거 뿐 아니라 현재 삶에서조차 우리는 어떤 사건에 대한 사실을 그대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최근의 우리 현대사 55년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가 실제로 경험했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또한 어떤 이유에서든 정확히 알려지지 못했던 사실들에 대한 새로운 역사가 아닐까? 

유시민 작가는 책의 서문에서 현대사를 기록함에 있어서의 민감함과 위험성에 대해, 그리고 집필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 중에서도 현대사는 특별히 민감하다.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은 현재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주역들이 살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죽고 없더라도 그들의 행위로 인해 억울하게 고통을 겪었거나 정당한 또는 부당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살아있다. 현대사 논쟁은 고대사나 중세사 논쟁과 달리 격렬한 감정의 표출과 정치적 대립을 동반한다. 그래서 현대사를 이야기하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 삶에서 안전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인생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내가 보고 겪고 참여했던 대한민국현대사를 썼다. 1959년부터 시작한 것은 내가 그때 태어났기 때문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과거를 회고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p9-11   

이 책은 지난 55년간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옳든 옳지 않든 그렇게 역사가 흘러 갈 수 밖에 없었던 배경과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고, 중요한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한 공과 또는 성패가 잘 평가되어 있다. 그렇지만 진보성향의 지식인이고 민주화운동세대인 작가는 경제, 사회, 문화적 측면이 아닌 정치적 측면을 다룬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객관성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듯 보였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되었거나 생명의 위험을 감수했던 사람들이 비중있게 다루어 지고, 사회주의 혁명운동과 친북 경향의 민족해방 혁명운동으로 반분 되었던 1980년대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의 흐름에 대해서도, 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했던 집회와 시위들이 과격하다 못해 폭력적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설명하고 변호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에는 역사가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반영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전적으로 객관적일 수는 없음을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역시 E.H.카가 언급했던 "역사상의 사실은 언제나 기록자의 마음속에서 굴절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하게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역사책을 대할 때 우리는 그 책에 어떤 사실들이 담겨 있는가에 관한 문제보다는 이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의견이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살피는 게 좋다. 그래서 자서전도 아닌 현대사 책을 쓰면서 먼저 개인사를 이야기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출신성분과 경력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 쓴 한국현대사다. 모든 사회가 그러하듯 대한민국도 여러 얼굴을 가진 매우 복잡한 사회이며, 내가 보고 경험하고 연구한 것은 그 일부일 뿐이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지향을 품고 다른 삶을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나와는 크게 다른 시각으로 우리의 현대사를 저술할 것이다. p18-19


책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1장 - 역사의 지층을 가로지르다:1959년과 2014년의 대한민국

1959년 돼지띠

평등하게 가난했던 독재국가

불평등하게 풍요로운 민주국가

욕망의 위계

그라운드 제로, 그리고 욕망의 질주


제 2장 - 4.19 와 5.16: 난민촌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냉전의 모델하우스

반민특위의 슬픈 종말

미완의 혁명 4.19

성공한 쿠데타 5.16


제 3장 - 경제발전의 빛과 그늘: 절대빈곤, 고도성장, 양극화

한강의 기적

이륙에서 대중소비사회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

한국형 경제성장의 비결

외환위기, 원인과 결과

양극화의 시대


제 4장 - 한국형 민주화: 전국적 도시봉기를 통한 민주주의 정치혁명

민주화의 보편성과 특수성

5.16에서 10월 유신까지

10월 유신에서 10.26까지

10.26에서 6월 민주항쟁까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제 5장 - 사회문화의 급진적 변화: 단색의 병영에서 다양성의 광장으로

늙어가는 대한민국

가족계획과 기생충 박멸

민둥산을 금수강산으로

금서, 금지곡, 국민교육헌장

전태일, 문송면, 반올림

안보국가에서 복지국가로


제 6장 - 남북관계 70년: 거짓 혁명과 거짓 공포의 적대적 공존

레드 콤플렉스

장성택과 이석기

간첩, made in Korea

세 번의 전환점

정전협정체제와 북핵문제

평화통일로 가는 길


에필로그: 세월호의 비극, 우리 안의 미래

개인적으로 인상적었던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1. 조선이 무너지고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을 치르고 난 우리의 1950년대 초는 도덕적, 정치적 권위와 경제적 힘을 가진 지배층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였다. 강력한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과 통일성을 가진 민족으로서 전통적으로 지식을 중시하고 지식인을 우대했던 우리는 세계 경제의 기술적 변화를 쉽게 따라잡을 수 있었고,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의지를 묶어내는 집단적 능력을 다른 국가나 민족에 비해 강하게 발휘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59년의 평등하게 가난했던 독재국가는 2014년 불평등하게 풍요로운 민주국가로 바뀌었다. 

2. 친일파와 일재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민족사적 정통성을 결여한 채 출발한 이승만 정부는 경제적 효율성도 , 민주적 정당성도 가지지 못했다. 이승만과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3.15부정선거가 원인이 되어 곳곳에서 발생한 시위 중 마산에서 고등학생 김주열군이 최루탄을 머리에 관통한 채 시신으로 떠올랐다. 부정선거와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시위는 계속되었고 점차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정치혁명으로 치달아 1960년 4월 19일에는 총격전 까지 발행하여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결국 시민이 승리했으나 4.19는 미완의 혁명이었다. 부정선거 규탄으로 시작해 민중의 힘으로 독재자를 축출하고 새 정부를 세웠다는 점에서는 분명 성공한 정치혁명이었지만 그 혁명을 완성할 능력과 의지를 가진 주체가 없었기에 혁명의 정치적 결과는 기존 정치세력 민주당의 집권으로 귀착되었다. 장면 정부는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군사정변에 무너졌으며 혁명은 완성되지 못한 채 역사에 남았다. 그러나 4.19가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중이 궐기해 권력자를 축출하고 정권을 바꾼 위대한 사건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4.19는 신생국가 대한민국이 정통성 있는 국민국가를 향해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p87-89

3. 혁명인지 쿠데타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쿠데타는 혁명과 달리 민중의 동의와 지지와 참여가 없이 폭력으로 국가질서를 전복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행위다. 군대를 동원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군사쿠데타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학술적 개념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5.16을 굳이 혁명이라고 주장하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니 결과적으로 5.16은 잘 된 일이었고, 잘된 일에는 군사정변이나 쿠데타보다 혁명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운영을 잘해서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도 5.16이 군사쿠데타였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p94

4. 전제정치를 타도하는 민주주의 정치혁명의 유일한 방법은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사회적 특성상 비정상적인 국가 권력에 대해 우리가 저항권을 행사할 수방법은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도시봉기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 민주화 운동 역사에서 테러가 투쟁방법으로 쓰이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대신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가들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죽였다. 스스로 목숨을 버림으로써 대의를 알리고 대중의 관심과 각성을 일으키려 한 것이다. 테러와 암살이 아니라 분신과 투신을 선택한 투쟁방식은 세계사에서 매우 드문 일이었다. p179-180

5. 연속적, 동시다발적, 전국적 도시봉기로 민중이 저항권을 행사한 최초의 사례는 3.1운동이다. 두 번째 사례는 4.19혁명이고 세 번째 사례는 6.29선언으로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 약속을 이끌어냈던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다. 승리한 6월 민주항쟁과 비극으로 끝난 1980년의 광주민중항쟁의 차이는 딱 하나였다. 광주민중항쟁은 국지적 도시봉기였다. p182  

6. 모든 권력은 집중과 확대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진보든 보수든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감시와 견제가 느슨해지면 누구나 권력을 오남용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이럴 때 시민들이 참여하고 비판하고 저항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제도는 껍데기로 전락하고 만다. 민주주의 성숙도는 주권자인 시민의 의식과 행태가 좌우한다. p189

책 내용을 정리하다보니 역사를 쓰는 역사가도 주관적으로 글을 쓰지만, 읽는 사람도 주관적으로 글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내가 감명깊게 읽은 부분들이 뭐.. 전부 좀 왼쪽으로 치우쳤네.. 

엥겔스는 "역사는 잔인해서, 전쟁뿐만 아니라 평화적인 경제 발전에서도 시체더미 위로 승리의 전차를 몰고 간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남녀를 불문하고 어리석기 그지 없어서,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이 강요되지 않는 한 진정한 진보를 위한 용기를 발휘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 패턴을 보아도 이 말이 그대로 적용된다. 

집권세력 또는 정부의 독재, 인권탄압, 부정부패 -> 야당 또는 지식인, 종교인, 문화인등 시민사회 리더인 재야인사들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 -> 대중의 호응이 없으면 집권세력은 같은 행태 반복 -> 투쟁대열에 청년학생들 가세 및 거리시위 -> 시민의 합세 없으면 정부는 적당히 진상 은폐, 몇몇 책임자 처벌 및 시위 주동자 구속, 경찰동원 시위 진압 -> 집권세력은 또다시 독재, 부정부패 -> 다시 같은 투쟁 패턴 반복 -> 정부는 배후에 불순세력, 북한이 있다며, 간첩단 사건, 용공이적단체나 반국가단체 조직사건 발표 -> 경찰투입하여 시위자 연행, 구속으로 일단락 -> 다시 부정부패 -> 대중지지로 투쟁열기 계속되어 전국 10대도시에서 100만명의 시민들이 동시에 시위를 벌일 경우 경찰도 제압 불가하여 민주화 운동 성공(p183-184 정리). 

그러나 이렇게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민주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역사적으로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 경우란 거의 없다. 노동운동사, 독립운동사, 민주주의 역사를 보아도 피를 흘린 사람들에게 주어진 대가는 사실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결론이 너무 회의적인가? 독립된 사건 하나 하나만을 따져 보면 회의적일 수 밖에 없지만, 이렇게 흘린 피와 희생들이 모여 지난 55년간의 민주화 역사를 만들어 냈음을 보면, 작가의 말 처럼 "우리 현대사 55년은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만한 역사"가 맞는 것 같다.    

패션에 Must Have Item이 있다면, 책에는 Must Read Book이 있겠지.. 

<나의 한국현대사>는 내가 생각하는 "꼭 읽어야 할 책" 중의 하나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민주화운동사가 궁금해서 주로 정치적인 부분들만 발췌해서 내용을 정리했지만, 이 책에는 지난 55년간의 경제, 사회, 문화 발전사도 정말 쉽고 재미있게 풀어져 있다.   

Most of the important things in the world have been accomplished by people who have kept on trying when there seemed to be no hope at all. -Dale Carne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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